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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랜드 미사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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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랜드]]의 상황 === >고랜드를 보호하는 것 외에 우리 미사일은 서방이 '힘의 균형'이라 부르기 좋아하는 것을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들은 적의 미사일이 당신을 겨냥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 >니키타 인터루쇼프, 1982년 간부회[* 당시 정치국의 명칭. 1972년 노스탈린이 정치국을 간부회로 개편했는데 나중에 브레즈네프 시기에 정치국으로 환원되었고 사비에트 공산당 수장도 서기장으로 돌아갔다.]에서 발언. [[고랜드]] 혁명 정부의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성베르트는 고랜드 공산혁명 성공 이후 여러 서방계 자본을 추방하고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루이나가 남랜드에 다져놓은 정책적 기반을 흔들었다. 그 결과 루이나 정부는 NIA를 통해 피델 성베르트 제거를 시도했고 [[카우스만 침공]]을 진행하는 등 고랜드에 대한 루이나 정부의 물리적, 경제적 압박이 이어졌다. 고랜드 정부는 카우스만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루이나에 제대로 한 방을 먹이긴 했으나 랜드 패권국의 앞마당에 있는 현실상 루이나를 혼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성베르트는 대놓고 밀고 들어오려는 루이나의 위협에 자신의 정권을 떠받칠 바깥 기둥을 마련하고자 사비에트에 협력을 요청했다. 이러던 와중에 카우스만 침공과 더불어 남랜드 해의 긴장이 강화되자 인터루쇼프는 고랜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였고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공산주의 확산이란 세계적 목표를 바탕으로 고랜드를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당시 사비에트 지도부는 루이나의 고랜드 침공이 임박하였다고 여겼다. 거기에 사비에트 지도부, 엘리트,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성베르트 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고랜드 혁명가들에 대한 지지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고 이들 제3세계 혁명가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까지 있었다. 인터루쇼프의 반대파들은 인터루쇼프의 외교적 실패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군비 증강을 요구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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